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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인생의 의미를 다시 쓴다’

2인의 문인화가- 제2의 인생을 사는 법

기사입력 2017-05-21 오후 11:15: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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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타임즈] 인생이 예술이고, 예술이 인생이다- 한국문인화가 인당 정종배 옹. 예술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무엇을 하던 작품으로 승화되면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한국문인화가 황숙주.

  

 

고희를 훌쩍 넘은 75세 나이에 대한민국 예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문인화가. 회갑, 2의 인생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예술가로 변신하며 당당하게 미술계에 등단한 한국화가.

 

이들의 공통점은 평범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자신 안에 내재돼 있던 길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 그들은 평소 사랑하던 취미, 동경했던 예술활동을 제2의 업으로 삼았다. 예술에서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예술 DNA가 빛을 발하며 자신의 인생을 찾은 사례들이다.

 

요즘을 흔히 100세 시대라 한다. 그러나 수명은 대폭 늘어난 반면, 직장의 퇴직 주기는 이전과 그대로다. 보통의 경우 50세 전후 명퇴와 60세 부근 정년 퇴임이 일반화 돼 있다.

 

이런 일반인들의 제2의 인생은 어떻게 시작될까? 대부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자신만의 재능이 무엇인지?’ 그간 타성에 젖은 직업적 관성과 습관 탓에 가늠할 길이 없어져 버렸다. 그 만큼 자신만의 인생이 아닌 수동적인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런 만연한 현실과 세태 속에서 자신의 내재된 DNA를 승화시켜 꿈을 이뤄가고 있는 이들은 타산지석, 귀감의 대상이다.

 

 © SNS 타임즈

 

황혼에 대상 거머쥔 문인화가 인당 정종배 옹

정종배 옹은 올해 만 75세다. 전직 경찰 고위 간부 출신이다. 2017년 대한민국 남북통일 세계예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5년 전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입문한 그의 수상경력은 작년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에는 아마추어로 어떻게 전시회에 출품하는지 조차도 몰랐다는 고백이다. 출품 첫해인 지난해, 세종시 주관 서예대전에서의 입상과 대한민국 성삼문 서예대전에서 동양화와 서예, 문인화로 삼체상을 수상했다. 미술가로 입성해 첫 수확이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다. 물론 그의 수상이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공직 시절 그는 틈틈이 붓을 잡고 서예를 즐겼다. 36년 공직생활 동안 취미생활로 문인화가의 기초를 닦아온 셈이다.

 

정종배 옹은 정년 퇴임 후 지역문화센터를 통해 그림공부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간 닦아온 서예를 기초로 한국화를 공부하며 새로운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그는 여기에 더해, 세종시 조치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문인화의 대가 효산 최원남 선생을 만나며 화가로서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효산 최원남 선생은그의 한국화 작품은 사실, 그 전에 공부하고 스스로 꾸준히 익힌 결과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것입니다. 단순히 3년의 실력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평했다.

 

그는 효산 선생을 스승으로, 3년동안 매주 2회 사사를 받으며 200매의 화선지를 꼬박 채우는 연습벌레 이기도 하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밤낮으로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연습하며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효산 선생은 연습 결과를 검토하는데 만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정 옹은 스승이 수정해 준 부분을 집에 돌아가 교정하며 다시 화선지에 채우는 반복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림과 서예도 투철한 책임감과 의지, 끈기가 있어야 작품으로 탄생한다고 강조하고, 70세 이후부터는 하루 일상을 그림과 문인화 공부에 매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정종배 문인화가는 예술은 젊었을 때부터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데, 때가 되면 꼭 해보고 싶다는 의욕과 존경심이 항상 마음에 가득차 있었다. 정년 퇴임 후 시간적 여유와 함께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며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가 열정적으로 자신을 이끌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인생에 있어 미술이라는 예술에 대해, “예술이라는 것은, 자신의 천성과 재주를 갈고 닦아 만든 아름다운 작품을 스스로 향유하고 또, 타인과 함께 공유하며 즐기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예술은 내 인생의 중심에 있다, 프로작가로 돈벌이 수단이 아닌 아름다운 예술을 향유하고 싶다. 예술은 취미이자 인생자체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는 여러 차례 수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설정한 수준에는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서예와 문인화, 산수화 등 모두를 섭렵해 봤다. 단순성 보다는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산수화, 특히 눈에 딱 들어오는 호감가는 그런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종배 옹은 자신의 인생과 예술가로서 제2의 삶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또 다른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자서전을 내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어려운 고난속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거울삼아 더욱 꿋꿋하게 살도록 꿈을 심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 어린이나 퇴직자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강단에 서서 많은 이들과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하고 공감을 통해 서로 힐링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SNS 타임즈

 

정년은 나의 꿈을 실현하는 기회의 장, 한국화가 운해 황숙주 님

황숙주 화가는 한 갑자를 새로 시작하는 시기를 얼마 앞두고 정년과 함께 마음속에 품어온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2014 57세의 나이로 정년을 맞으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나 엽서 등을 모방해 그리는 취미와 재능이 있었다. 그런 끼가 잠재해 고교 졸업 후 평택에 직장을 잡으며, 낮에는 직업전선에서 저녁에는 화실에서 그림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 공부가 35년을 맞고 있다. 처음 서양화로 입문한 그림 공부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국화로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런 만큼 그의 한국화 작품에는 서양화 풍이 풍겨져 나온다는 것이 주변 지인들의 평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화가의 꿈을 키워온 만큼, 그의 첫 출품과 수상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92 10월 송탄 미술대전에서 한국화추수, 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 당시 한국화는 우수상이 최고의 상으로 대상이 없었던 시절이라고 했다.

 

황 작가는 정년 후, 고향인 세종시 부강면으로 내려와 유산인 농지에 농사를 겸업하며 미술가로 작품활동에 전념해 왔다. 그는 올해 대한민국 남북통일 세계예술대전 최우수상을 비롯해 3년간 계속 미술대전에서 수상을 해왔다. 젊은 시절부터 기초를 닦아온 저력이 발휘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황숙주 작가도 정종배 옹과 같이 효산 선생과 우연한 기회로 인연을 맺었다. 시기도 비슷한 3년 전이다. , 같은 문하생으로 전국대전에서 최우수상과 대상을 나란히 수상했다. 효산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그의 탄탄한 기초에 깊이가 더해졌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미술가로 그가 지향하는 길은, 대가가 되거나 전문적인 작가로 돈을 벌기보다는 친구 같은 인생의 동반자로 한국화를 즐기고 꾸준한 작품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림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인 그의 미술 여정에도 위기가 있었다. 처음 미술대전에서 수상했던 이듬해 93, 그는 예비군 훈련 중 교통사고로 장애6급 국가 유공자 판정을 받았다. 그 이후 세월이 지나며 몸은 조금씩 더 불편해 지며 지금은 목발에 의지해 거동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효산 선생 화실을 오가며 배움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그의 노력이 3년 연속 미술대전 수상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는 한국화라는 그림에 대해, ‘선 생각과 상상을 통한 구상, 후 그리기라는 지론을 폈다. 그 만큼 어려운 구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이것이 이루어 지면 그 이후는 그림이 술술 풀려나간다는 것이다. 한국화가들은 90% 이상을 생각과 상상 추측을 통해 작품활동을 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황 작가의 작품 활동 주 영역은 문인화 중 사군자 분야다. 그는 현재 약 100여점의 작품을 그려냈다. 이중 25점을 표구로 준비해, 올해 9월 조치원 시민회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앞으로 기회가 되면 재능기부를 통해 어린이나 부녀회, 지역사회 등에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황 작가는 미술이라는 예술 활동에 대해 특별한 의미부여 보다는 농사와 같은 일상적 행위라고 규정한다.

 

“농사와 예술이 다르지 않다! (작품을)잘 지으면 예술이고, 못 지으면 졸작이다. 농사도 그와 같다, “사는 것 자체가 예술이다. 특별히 구분화 된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소재와 행위가 예술의 대상임을 강조했다.

 

황숙주 작가는 특별히 어떤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은 없다고 한다. 그는 다만 아직까지 자신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작품이 없어, 인내와 노력으로 그 결과를 반드시 이뤄보겠다는 원을 세웠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인 욕망 보다는 스승인 효산 선생의 문하생 규모가 날로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황숙주 작가는 “효산 화실이 널리 퍼져 많은 제자와 선배들이 배출돼, 동아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작품과 예술 활동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다. 황 작가는 그 이유에 대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누며 미술 발전을 위해 서로 의지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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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령 기자 (editor@sns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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